서른의 방황, 그리고 다시 시작.

2023-02-09

방황의 서막

백엔드 개발을 6년정도 했을 무렵 데이터를 가지고 프로덕트를 만들거나 만들어진 프로덕트를 분석하다보니(이당시에는 분석을 직접 한다기 보다는 기웃기웃 보는 정도였다.) 그동안 해왔던 개발은 내가 이 이상으로 잘할수 없는, 뭐 그냥 관성처럼 해왔던 일처럼 느껴졌다.

작년엔 당시 근무하던 스타트업에서 기회가 찾아와 데이터 엔지니어로 자연스럽게 직무를 전환하게 되었고, 데이터 분석가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회사의 모든 데이터는 A-Z 까지 다 다뤄볼수 있겠구나 싶어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해왔던 개발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데이터 엔지니어는 말그대로 날것의 많은 양의 데이터를 입수(내부에서 얻을수 없다면 외부에서라도 얻어서)시키고 가공하는, 또 무수한 데이터를 어떻게 안정적이고 확장성 있게 이 과정을 수행할지를 검토하고 개발해내는 결국에 “엔지니어”였던 것.

어떤 마음이였을까

사실 나는 데이터를 어떻게 쌓을지보단 이미 나와있는 데이터를 실제로 어떻게 사용할지에 관심이 더 많았다. 결정적으로 데이터 엔지니어라기엔 기술적으로 한참 부족했다. 어떤 일을 하는지 말하기도 머쓱했고 불편했다.

이 시점에 이미 나는 나에게 맞지 않는 옷(개발자)을 어떻게든 벗고싶어했다. 다소 부풀려진 높은 연봉과 그에 따르는 책임들이 마치 내 어깨를 매일 짓누르는 것 같았달까.

그냥 냅다 질러버리기

단순히 개발이 하기 싫다는 이유로 퇴사를 결정한 건 아니었지만 이 불편함에서 벗어나 내가 잘할수 있는걸 반드시 찾아내고 싶었다. (사업 같은 거창한 일을 이야기 하는건 아닐뿐더러 결혼 준비, 약간의 번아웃 등 여러 이유가 있었다.)

아무곳에도 속하지 않은 날것의 나를 보는 일은 꽤 부끄럽고 불편하지만 꼭 해야할 일처럼 느껴졌다. 그렇지 않으면 이전과 다를게 없다고 생각했고, 다시 직장인으로의 삶으로 돌아가더라도 이 과정을 거치면 그때랑은 다르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퇴사 후에 무슨일이 있었지

관성에서 벗어나려는 첫걸음을 떼고 지금은 그 후로 거의 1년이 다와간다. 솔직히 그동안 불안하지 않았다고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류의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다.

퇴사 후 세달까지는 신나게 놀았다. 짝꿍과 그동안 못다녔던 국내여행을 마음껏 다니면서 나와 우리는 어떤 여행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졌으며 11월에 있을 결혼식 준비도 열심히 했다. 새로운 취미인 뜨개를 만나 내가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서 팔아보는 귀한 경험도 했고 해야지 하면서 미루기만 했던 유튜브도 시작해서 꾸준히 올리고 있고, 일상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못 읽었던 책도 많이 읽고있다.

이런 과정속에서도 내가 할 일에 대한 고민은 끊임없이 했던 것 같다. 혼자 일하는걸 과연 좋아하는 사람일까? 개발을 다시 해야 하나? 잘 할수 있을까? 회사에 다시 가는게 맞나? 등등의 수많은 질문들을 떠올려보았다. 도출된 결론은 나는 서로 에너지와 피드백을 주고 받을수있는, 그러니까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환경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잘 해낼수 있는일에 도전해보자

겉으로는 잘하는 것처럼 보여왔지만 실은 그다지 잘하지 못했던 이 일을 6년간 끌고오다 보니 점점 나에 대한 불확실함만 더 커져갔다. 특히 쿠버네티스, 동시성, 확장성 등의.. 이런 기술 관련된 대화에 끼기 싫었고 모르는걸 모른다고 하기도 싫은 그런 치사한 마음도 들었다.

다만 누군가가 분석 거리를 들이밀면 그때만큼은 눈이 반짝거렸고 해달라고 한적도 없는 내용까지도 기꺼이 해주곤했다. 구성원들이 같은 목표를 바라보도록 도우는 데이터의 힘이 좋았다. 데이터 그 자체의 힘 보다는 맥락과 해석에 따라 막강해지는 힘이 좋았다. 아직 데이터 분석은 실무에서 해보지 못한 것들이 많아서 분석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어쩌면 이러한 결론이 그냥 직장에 다시 돌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한건 아닐까, 나를 속이는 것이 아닐까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보았다. 지금 내가 할수 있는 것과 할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데 나름대로 구분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고민은 끝이없는 나태함만 낳을 것 같아 더이상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했다. 까짓꺼 해보지 뭐.